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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각을 바라볼때 조각도 우리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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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12) 조각에서 인형의 탈을 벗기는 신종훈 <시리즈 끝>
짝다리 짚거나 주머니에 손 꽂는 등 자연스러운 몸의 긴장과 자세 구현 불로 표면 태워 ‘인형의 탈’ 벗겨내
단순 재현 - 생생한 존재 사이 줄타기 눈은 사라져도 시선은 몸전체에 남아 타자로서 대등한 응시의 관계를 남겨 두툼한 겨울 외투의 비뚤어진 칼라와 어수선한 주름들, 늘어진 옷 끄트머리, 호주머니에 넣은 손과 삐딱한 어깨, 한쪽 발을 바깥으로 조금 틀어 짝다리로 서 있거나 혹은 가지런히 두 발을 모아 선 자세가 자연스러워 보인다(‘코트 입은 김성희 모델’). 모델 조각이 자연스럽기는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단순히 해부학적으로 정확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처럼 보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바닥에서 가볍게 떠 있거나 몸이 굳어 있는 모습이 대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신종훈의 조각은 자기 두 발로 땅을 딛고, 스스로 허리를 세워 의자에 앉아 있다. 왜일까? 무엇이 그의 조각으로 하여금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일까? 작품의 형상이 막 드러나려는 순간, 조각가는 모델과 조각을 겹쳐 하나의 덩어리로 볼 수는 있어도 둘을 동시에 볼 수 없다. 조각가의 시선이 작품의 표면에 머무는 순간 모델은 시선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는 저 너머의 실제 모델을 눈에서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기 손에서 막 나타나고 있는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조각가는 감각적 기억을 좇아 조각을 만지지만, 두 손 위의 작은 모래 산이 그렇듯 방금 전에 보았던 그것은 이미 그에게 없다. 무엇인가 계속해서 일을 어긋나게 만들고 있고, 분명하지 않지만 모델의 모습도 조금 달라져 있다. 잘못 보았던 것과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보이면서 조각은 좀처럼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나타났다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인형에는 시선이 없다. 그러나 신종훈의 조각에서 나는 시선을 발견한다. 시선은 내 몸의 감각이 타자의 존재를 발견하는 방식이기에, 그의 조각에서 시선은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이 먼저 알아채는 어떤 감각으로 경험된다. 시선은 나를 향해 있는 것 같다가도 나를 비껴가고, 분명 거기 있었던 것 같지만 곧 사라져 버리며, 가까이 있어도 아득하고 멀리서도 여기에 현전한다. 여기에서 나는 언제나 나의 바깥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주체로서 우선된다. 나 또한 보이는 존재라는 진실을 일깨우는 것은 나를 밀어내는 타자에 의해서다. 시선은 오직 나와 대등한 관계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보듯 조각 또한 나를 응시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조각이 한낱 모조품에 불과하다면 조각의 시선이란 말은 허상에 불과하다.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원래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움푹 패고 거칠게 어질러져 있다. 그러나 이 조각에서 시선은 더 이상 특정 신체 부위에 머물지 않고 몸 전체로 확장된다. 눈썹활과 광대, 턱과 발끝, 양 가슴까지 온몸이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면서 정면이 열린다. 정면은 더 이상 조각의 앞이 아니다. 그것은 조각의 몸이 여는 장소이며 동시에 내가 서게 되는 자리다. 신종훈은 조각을 나와 마주 서게 한다. 여기에서 그의 조각에 시선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인형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조각이 나와 마주하는 타자가 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조각을 완전한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조각하는 주체의 혼란이 서로 중첩되면서 불확실성은 가중된다. 조각가에게 모델은 시시각각 타자이면서 하나의 형상이며, 그의 조각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그 관계가 역전된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모델과 달리 조각에서 이제 막 자세를 잡고 무언가를 보는 듯한 희미한 힘을 느끼는 것이다. 깊은 침묵 속에서 모두가 정물처럼 굳어 버리거나, 찰나지만 서로를 응시하는 타자가 되기도 한다. 이 엇갈림 속에서 조각가가 더하고, 더한 것을 빼고, 뺀 자리에 다시 더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작품의 표면은 거칠고 어수선해진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작가의 예술적 표현이나 스타일로 단락 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조각가와 모델 그리고 조각이 서로를 밀어내고 당기는 불안정한 순간들의 누적이다. 그의 조각은 이러한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그의 조각이 보이기만 하는 조각물과 나를 응시하는 시선의 몸, 아무것도 없는 인형 사이를 갈팡질팡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조각에서 타자로서의 존재 문제, 즉 여기에서 이야기되는 시선의 문제가 까다롭고 어려운 것은 내 몸의 감각과 판단이 서로 엉키면서 문제를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저기 조각의 실루엣에서 사람임을 알아채고,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듯한 시선을 감지한다. 몇 걸음 더 내디디면 아담한 키와 묶은 머리에서 여자임을 알게 되고, 더 가까이 다가서면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떤 무미건조함을 느끼게 된다. 점차 나의 눈은 감관인지 판독을 위한 도구인지 불분명해지고 감각됐던 것들은 의미로 경화된다. 그리고 딱딱한 사람 모양의 텅 빈 조각물만 남는다. 시선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있다. 혹자는 조각에서의 시선이 현학적인 말놀이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불확실한 경험 속에서 조각의 시선이 존재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신종훈의 조각에서 시선은 점멸하는 가로등처럼 불안하더라도 분명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종훈에게 모델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물어야 한다. 모델은 단순히 보고 만들 대상이 아니다. 예컨대, ‘코트 입은 김성희 모델’에서 저기에 김성희가 있는 것처럼 조각이 스스로 있으려면 신종훈은 인형으로, 텅 빈 조각물로, 보이기만 하는 물건으로 미끄러지는 자기 조각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 다른 것으로 대신 될 수 없고, 조각가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단단하고 무거운 하나의 실재가 필요하다. 모델은 조각가에게 그런 존재다. 그의 조각이 모델과 닮아 가는 것은 조각가가 그 실재에 자기를 단단히 고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현의 기술은 조각가가 실재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실재를 재현으로 붙잡기는 불충분하다. 재현으로 박제된 몸은 부자연스럽게 굳어 버린 텅 빈 인형이 돼 버린다. 신종훈은 조각에서 인형의 탈을 벗겨 저 앞의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 불을 빌려 재현의 막을 지운다. 종이로 켜켜이 쌓아 몸을 입은 조각의 표피를 태워 날리면 이제야 비로소 조각가가 모델에게서 어렴풋이 보았던 저 느낌이 조각에 드문드문 남게 된다. 그러나 불과 함께 부서지고 패어서 떨어져 나간 만큼 조각은 모델에게서 멀어진다. 그리고 모델의 존재가 조각에서 지워지는 만큼 신종훈의 조각은 자기 자신이 되고, 하나의 작품이 된다. 조각에 들러붙은 차가운 탄내가 전시장을 덮으면 현실의 소란과 그것을 헤집는 사람들의 산만함도 함께 가라앉는다. 거칠게 덧바르고 훑고 쓸어 버린 그을린 표면 위에서 머리며 몸이며 옷이고 할 것 없이 함께 뭉그러지면, 이제 겉옷은 없고 하나의 몸만 남는다. 마치 존재마다 저마다의 모양과 부피가 있다는 것처럼 그런 몸들이 여럿 있고, 각기 다른 모양이며,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존재 일반이 아니라 환원될 수 없는 개별로 선다.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어떤 몸으로. 다른 어떤 것으로 대신 되지 않는 하나의 몸으로. 도래할 시선을 향해 몸을 열고서, 우리가 시선을 거두는 순간에도 하나의 존재로서 자기 무게를 지탱하며 서 있다. 채길원 미술평론가 신종훈(41) 조각가는 서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 작가는 조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단하고 오래 지속되는 재료 대신 얼음이나 연기, 드라이아이스처럼 소실되거나, 종이나 풀어 헤친 마닐라삼(밧줄 등을 만드는 질긴 섬유)과 같이 연약한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인 인체 작업을 탐구해 왔다. 그는 조각이 단순한 사실적 재현을 넘어 존재의 불가해한 기척과 여운을 드러낼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재료의 물성을 통해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예를 들면, 종이로 캐스팅한 인체상을 불에 그슬려 형태를 무디게 하거나, 얼음으로 만든 조각을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녹아내리게 함으로써 조각을 하나의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소멸과 부재를 포함하는 사건으로 치환한다. 2025년 아트스페이스 카고에서 열린 ‘뭍으로 걸어가’ 전시에서 마닐라삼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그의 조각은 흩어지듯 흐릿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 형체를 일군다. 2018년 우석갤러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2014년 코사(KOSA) 갤러리에서 ‘사라지다’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같은 해 한국조각가협회의 신진 작가상을 받았다. 내달 3일부터 8월 23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그동안 이어 온 ‘사람을 만든다’는 질문을 확장해 선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