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위에 ‘위트’ 한조각 행복한 변주
|
|---|
|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4)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조각가 노준
1990년대 ‘깜찍이 소다’ 달팽이 캐릭터 만들어 조각 작업 하면서 봉제인형과 흙으로 재탄생 2006년 송은미술전서 대상 받으며 각광
친숙한 이미지 활용… 밝고 유쾌한 조각 추구 어린이 병원 작품 기증 ‘희망의 메시지’ 전해 마카롱이다! 앗, 아니다. 실제 마카롱과 똑같이 만든 조각이다! 파스텔 톤으로 예쁘게 빚어진 여러 마카롱이 니케의 날개를 장식하고 있다. 익숙한 고전적 이미지 위에 달콤한 위트를 얹은 이 조각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미소를 자아낸다. 바로 조각가 노준의 작품이다. ◇ 노준다운 작품의 시작= 마카롱처럼 누구나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노준 작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는 그의 청년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혹시 1990년대 히트 상품 ‘깜찍이 소다’를 기억하는가? 지금도 귀에 맴도는 로고송 속 귀여운 달팽이가 노준의 손끝에서 탄생한 캐릭터였다. 우연히 참여한 프로젝트였지만 노준은 그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고, 대중의 호응도 얻었다. 하지만 상업 미술의 세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보다는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따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그는 이내 다시 순수 예술의 세계로 돌아갔다. 서울대 박사 과정 시기에 만든 비구상 조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나답지 않은 작품”이라 느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돌파구를 찾던 그는 자신의 컴퓨터 속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이 아이들을 조각으로 만들어 볼까?’ 그렇게 그는 캐릭터들을 봉제 인형과 흙으로 재탄생시켰다. 노준만의 조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거의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방식이었다. 캐릭터 조각을 안고 인사동 갤러리를 전전하며 퇴짜도 많이 맞았고, 학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2006년, 반전이 일어났다.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이어 2007년에는 모란조각대상전 특선을, 2008년에는 김세중 청년 조각상을 받았다. 연이은 수상은 작업의 외형이 반드시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과 미술계의 인정을 동시에 얻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을 담은 조각= 그렇게 시작된 캐릭터 조각에서 최근의 마카롱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노준의 작품은 밝고 유쾌하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즐겁고,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 또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서일 거다. 2020년 무렵에는 그의 작품들마저 한층 더 행복해졌다. 어느 날 문득 작업실에 놓인 캐릭터 조각들을 보며 “춥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작가가 그들을 위한 집을 지어 주기 시작하면서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 조각들의 ‘집’은 관람자와 소장자에게는 작품을 보관하는 ‘박스’이자, 그 위에 올려 감상하는 ‘좌대’의 역할을 겸한다. 작품을 향한 작가의 작지만 세심한 배려는 작품의 주인공들과 소장하는 사람들까지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의 작품이 늘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소 다른 인상을 주는 작품도 있다. 예를 들어 바람이 빠진 채 힘없이 누워 있는 ‘기운 빠지고 조용한 움직임-핑크 라비’는 반짝이고 선명한 색으로 칠해졌음에도 축 처져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알고 보면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이 토끼는 노준의 딸이 아끼던 인형이었다. 처음에는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 있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바람이 빠져 버렸다. 그렇게 영영 사라질까 걱정하며 슬퍼하던 딸을 위해 노준은 인형의 원래 모습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 토끼는 시간이 지나도 더 이상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준의 딸 역시 더는 슬프지 않다. 해피엔딩이다. ◇더 나은 세상= 노준의 작품이 제시하는 ‘행복’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함께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존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동반자-아노다이징 처리된 슬리부’다. 이 작품에서 강아지 슬리부는 오리의 등에 올라 강을 건넌다. 수영하지 못하는 슬리부를 위해 오리가 기꺼이 등을 내준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를 태운 오리는 앞을 볼 수 없다. 대신 슬리부가 방향을 안내한다. 서로가 서로의 발이자 눈이 되어 주는 관계인 셈이다. 혼자서는 부족하지만 함께함으로써 완전해지는 관계, 돕는 것과 도움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이 모습이야말로 노준이 생각하는 ‘행복한 동행’의 모습이다. 그가 2016년경부터 꾸준히 어린이병원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해 온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진심에서 비롯된 자발적 선택이었다. 다소 거친 질감을 지닌 ‘기생충 시리즈’도 메시지는 동일하다. 작품의 윗부분은 사회의 상류 1%를, 아랫부분은 계급 사다리의 아래에 놓인 이들을 상징한다. 위아래는 서로 다른 색과 질감으로 대비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계층의 사다리가 끊어져 가는 현실과 달리 노준의 조각에서는 색이 중간에서 서로 섞인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상기시키며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를, 사회의 고점에 선 이들에게는 어렵고 약한 자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그가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마카롱 시리즈’ 역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앞서 살펴본 ‘마카롱의 향연-달콤한 승리의 조각상 2’는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를 주인공으로 다룬다. 하지만 노준은 니케의 날개를 마카롱으로 변신시킴으로써 전쟁과 정복, 폭력과 죽음을 전제한 ‘승리’의 상징을 달콤한 디저트로 바꿔 버렸다. 피비린내 대신 설탕 향을 감돌게 한 재치 있는 전복이다. 마카롱의 참을 수 없는 달콤함은 애초에 싸울 이유를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니케는 승리를 선포하는 여신에서 갈등을 내려놓길 권유하는 중재자로 변신한다. 평화, 이것이야말로 노준이 생각하는 진정한 ‘승리’의 모습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그는 이 달콤한 승리의 여신이 잠시나마 갈등을 멈추게 하기를 바란다. 2011년, 노준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노준은 같은 마음으로 성실히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그도 잘 안다. 자신이 꿈꾸는 세계가 이상적이고 원대하다는 것을. 각박한 현실 속에서 조각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묻기도 한다.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계속 소망하며 그저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할 뿐이다. 그의 한결같은 바람처럼, 그의 작업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정하윤 미술평론가
노준(57·사진)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 여러 공공장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야외 잔디광장에 설치된 ‘마시멜로로서의 삶’이 그중 하나다. 이 작품은 여느 조각과 달리 아이들이 직접 올라타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한 번 더 웃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둥글고 부드러운 작품의 형태와 푹신한 잔디 위에 설치한 것은 아이들이 신나게 놀면서도 다치지 않도록 신경 쓴 작가의 세심한 배려다. 더불어 작가는 서울시 어린이병원이나 아산병원 소아병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캐릭터 조각을 기증하여 설치해 왔다. 병원을 찾은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2019년 아부다비 스페셜올림픽(발달장애인 올림픽)에 동양인 최초로 그의 작품 7점이 영구 설치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기록과 순위보다 참여와 존엄을 중시하는 이 국제 스포츠 행사의 취지는 경쟁보다 화합을 지향해 온 노준의 조각과 맞닿아 있다. 3월에는 3m 높이의 니케상이 서울과학기술대에 세워질 예정이다. 마카롱 날개를 단 니케처럼 청년들이 자유롭게 미래를 그리고 창의적으로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작가의 희망이 담긴 작품이다. 노 작가는 1993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9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M.F.A)를, 2006년에는 박사 과정(Ph.D)을 수료했다. 2006년 제6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전시와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이어 오고 있다. 최근에는 6·25전쟁 참전국 22개국에 이 시리즈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얼룩진 전쟁의 기억을 무해한 달콤함으로 덮으려는 시도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그의 작업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기사보기] https://www.munhwa.com/article/11571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