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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거나, 눕거나, 기대거나… 침묵하는 조각에 ‘존재의 무게’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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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3) 인간 실존의 조건 탐구… 조각가 배형경
흙으로 빚어낸 투박한 덩어리 삶의 무게 짊어진 몸의 형상 쇠기둥·사다리 등 오브제 더해 인간 짓누르는 강박·사회 표현도
동북아 불교 조각서 실마리 찾아 ‘이성 기관’ 뜻 하는 머리 없애 오롯이 몸의 감각에만 집중 대지와 수평 이루는 ‘눕는 몸’ 자신 지탱할 수 없는 ‘최후 자세’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형상들 - 배형경 조각에 나타난 실존의 정치학 배형경의 조각은 ‘아름다운 형상’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삶의 가장 낮은 곳, 실존이 더 이상 스스로를 미화하거나 포장할 수 없는 적나라한 지점에 있다. 작업 초기, 흙으로 빚은 형상은 손발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채 덩어리로 있었다. 이는 사회적 주체 이전, 그러니까 미완의 실존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몸’ 그 자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형상적 악취는 혐오의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신의 질서와 초월적 의미가 붕괴한 이후 홀로 남겨진 인간이 현실에서 발산하는 실존의 냄새다. 이 냄새는 인간의 우연한 결함이 아니며, 오랜 시간 신체에 각인된 사회적·역사적 관성인 ‘아비투스(Habitus)’의 결과다.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삶의 습속은 인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걷게 만들고 살아가게 한다. 그의 조각은 바로 이 관성의 축적과 어둠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형상화했다. 그러나 이 악취는 실존의 종말을 고하는 징후가 아니라, 오히려 ‘탈습속’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것은 반복되는 삶의 방향을 멈추게 하는 최초의 떨림이자 어둠의 흐름을 교란하는 미세한 균열이다. 실존이 스스로를 인식하여 빛으로 향하게 하는 최초의 파동이기도 하고. 이 실존적 긴장은 2004년을 앞뒤로 등장한 쇠기둥, 철사 더미, 사다리와 같은 오브제를 통해 더욱 노골화되었다. 오브제들은 인체를 장식하거나 보조하는 조형 요소가 아니라, 인간을 짓누르는 거대한 사회적 구조다. 쇠기둥은 견고한 제도와 권력의 물성을, 풀리지 않은 철사는 해소되지 않는 강박을, 사다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승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의 형상들은 이 압도적인 구조물 앞에 서거나 기대어 있으며, 현실 정치가 인간의 몸을 어떻게 구속하고 억압하는지를 온몸으로 증언한다. 그럼에도 형상들은 결코 비굴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머리를 감싸거나 벽에 몸을 기댄 이들의 자세는 패배라기보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내는 ‘버팀’에 가깝다. 그는 인간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취약함을 감내하는 힘 또한 실존의 일부라는 것을 조각으로 깊이 톺아냈다. 실존은 고통인 동시에 관성을 깨뜨리는 저항의 힘으로 작동하는 무게이기에. 배형경 조각의 중요한 전환점은 ‘부처’를 향한 사유에서 비롯된다. 그가 말하는 부처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가면과 욕망, 역할과 이미지가 모두 벗겨진 뒤에 남는 존재의 페르소나다. 그는 서구 조각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비례가 우리 몸의 실존 감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성찰 끝에 동북아 불교 조각의 계보에서 존재의 무게를 드러낼 실마리를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인불합일(人佛合一)’의 사유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회귀를 뜻하며, 인간이면서 부처이고 부처이면서 인간인 본질적 상태를 지향한다. 이 본질에 닿기 위해 머리를 제거하거나 철사로 감싸는 과감한 선택을 내린 것이다. 머리는 이성의 기관이자 사회적 페르소나가 가장 밀집된 장소이며 사유가 만들어낸 강박과 규율의 흔적이 남는 곳이다. 머리가 사라진 인체는 사유의 부재가 아니라, ‘생각 이후의 상태’인 몸의 감각에 오롯이 집중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조각은 ‘문턱’의 단계로 들어선다. 이는 서 있음과 눕기 사이, 주체와 해체 사이에 가로놓인 공간에서 인간이 이전의 지위와 논리를 상실하고 스스로를 재배열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정지의 형상이다. 의자 위에 웅크린 인체나 벽에 기대선 몸들은 모두 이 전이의 시간을 수행한다. 이 시간은 존재를 다시 배치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후 형상은 서 있음에서 앉음과 웅크림을 거쳐 ‘눕기’의 자세로 이동하며 존재 조건의 급진적 전환을 맞이한다. 서 있는 몸이 세계를 향해 자신을 세우는 능동적 주체라면, 눕는 몸은 세계와 같은 높이로 내려오며 대지와 수평을 이루는 존재다. 그의 눕는 인체들은 결코 편안한 휴식이 아니다. 팔다리는 이완되지 않고 몸은 안쪽으로 접히며 얼굴은 바닥이나 벽으로 파묻히는 이 눕기는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을 때 도달하는 최후의 자세다. 그러나 바로 이 극한의 정지에서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지금-시간’이 발생하며 존재는 찰나에 수직으로 솟구치게 된다. 눕는 몸은 거짓된 선형적 시간으로부터의 이탈이며, 바닥이라는 가장 낮은 자리와 접촉하며 세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다. 상승을 욕망하지 않는 몸은 대신 ‘지금-여기’의 밀도를 획득한다. 그의 조각이 도달한 지점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회귀이며, 서 있음과 눕기의 반복은 스스로를 소멸시키며 동시에 재생하는 원형적 시간의 구조다. 그의 형상에는 계시의 빛이 없는 대신 인간이 통과해 온 시간을 지우지 않기 위한 어둠의 잔여가 남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정치적인 이유는 그것이 관념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몸’으로 체현되기 때문이다. 그의 조각은 효율과 생산성을 요구하며 기계화된 신체를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윤리를 해체한다. 대신 상처 입고 느리며 무력해 보이는 불완전한 생명의 신체를 다시 불러내어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눕는 몸은 어둠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그 곁에 머물며, 위계 없이 고통을 껴안는 이 자세는 ‘돌봄의 윤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눕고 웅크린 몸은 외부의 명령에 응답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권력과 제도가 강요해 온 ‘곧게 선 몸’의 관성을 거부한다. 이러한 거부의 방식이 바로 배형경 조각의 진정한 정치성이다. 조각 앞에서 관객은 더 이상 안전한 감상자가 아니며, 형상들 사이를 지나며 자신의 몸이 현재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이때 조각은 실존의 거울로 작동하며 관객의 무의식적인 습속을 흔들어 깨운다. 작가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대신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습속, 즉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우고 증명하려 했던 몸의 관성을 겨냥하고 있다. 결국 그가 수행하는 실존의 정치학은 자세의 전환을 통해 인간을 세계 속에 다시 배치하는 일이다. 그의 조각이 끝내 침묵하며 무거운 형상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유는 실존의 문제는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으며 결국 각자의 몸에서 매 순간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의 조각은 무엇을 주장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며, 그 자세를 타인에게 전이시키는 장치가 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벗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며, 여전히 서 있기만을 강요받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웅크린 채 버티고 있었는가. 이 질문은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하나의 감각으로, 몸의 기억으로 남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의 조각은 마치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벌판에서 바람을 이기려 서 있기보다, 스스로를 낮추어 대지에 몸을 밀착시킨 바위와도 같다. 비바람에 깎여 겉모습은 투박해지고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가장 낮은 곳에서 대지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냄으로써 그 어떤 화려한 건축물보다 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증명해 내기 때문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
조각가 배형경(71)은 40여 년간 ‘인간’이라는 본질적 화두에 침잠해 온 한국 형상조각의 독보적인 작가다. 그의 조각은 탄생과 죽음, 고독과 침묵이라는 인간 실존의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투박한 브론즈의 질감, 익명의 얼굴, 수직으로 선 고요한 인체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뇌를 응축하며, 수행적 성찰의 자세를 드러낸다. 서울대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중앙대와 국민대에서 강의하며 한국 조각계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인간, 그 이후’(2004), ‘Weight(무게)’(2013) 등 주요 개인전을 통해 인간 존재의 무게를 꾸준히 탐구해 왔으며, 2010년 김종영미술관의 ‘오늘의 작가’ 선정과 2020년 ‘김세중 조각상’ 수상으로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기관과 해외에 작품이 소장된 그의 조각은 물질을 넘어 영혼의 흔적을 기록하는 과정이며, 멈춰진 시간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되묻는 고요하고도 깊은 미학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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