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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각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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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사막 한복판에 설치한 수백개 스테인리스 봉, 조각인가 아닌가
  • 게시일 : 2022-10-14
  • 조회수 : 41

K-스컬프처와 한국미술
(13) 생태미학을 실천하는 '조각'
비바람 칠때 번개의 섬광 보여줘
자연의 질서 탐구했다는 점에선
대지미술 또한 생태적 조각인 셈
로저 리고스 '누에고치 풍경'로저 리고스 '누에고치 풍경'
 
김순임 '홈플러스농장'김순임 '홈플러스농장'

오늘날 조각은 광화문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견고하고 딱딱한 재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동시대 조각은 물렁물렁하거나 쉽게 변질되는 재료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온 재료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변화를 지속하는 '살아있는 식물' 자체를 조각의 재료로 삼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의 장에 자연의 일부를 가져오거나 아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미술, 자연환경미술, 대지미술, 생태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조각 아닌 조각'을 구현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을 뜻하는 그리스어 퓌지스(physis)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라는 '자연'을 의미하고, 테크네(tecnne)는 '기술, 과학, 예술'에 해당하는 말로 인간의 능력과 제작 지식을 가리킨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순연한 존재 자체이고 예술은 그것을 오염시킨 인공의 무엇, 즉 비자연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조각은 기본적으로 자연이 아니라 비자연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비자연으로서의 예술이 생태적 사유 방식을 품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 친화적이든, 반자연적이든, 대지미술도 넓게 보면 생태적인 사유 방식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생태학자 모통(Morton)이 "생태학적 사유는 상호연관성을 사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생태학이란 모든 존재의 연결을 전제하는 학문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1960년대 돌이나 나뭇가지 등 자연에서 재료를 취해 작업했던 리차드 롱(Richard Julian Long)이나, 사막의 한 벌판에 스테인리스 스틸봉 수백 개를 설치해서 번개 치는 극적 장면을 만들었던 월터 드 마리아(Walter Joseph De Maria)의 대지미술은 자연의 내재적 질서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가히 생태미술 혹은 생태적 조각이라고 할 만하다. 자연 친화적인 대지미술의 영향을 받아, 고드름으로 조각을 만드는 등 생성 소멸하는 자연을 탐구했던 골드워시(Andy Goldsworthy)나 꽃가루를 채취해 설치해 온 볼프강 라이프(Wolfgang Laib)와 같은 작가의 활동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들 모두 자연과 밀접하게 상호 소통하는 생태미학을 품은 작업을 펼쳐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면에 자연 환경을 천으로 뒤집어씌우는 크리스토(Javacheff Christo)나 언덕을 깎아 계곡을 만드는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거대한 설치형 조각 작업처럼, 반자연적 환경미술을 실천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대지미술은 '자연 친화적 미술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의 야투(Yatoo)와 같은 자연미술'과는 일정 부분 차별화된다고 하겠다. "대지미술은, 거의 예외 없이 자연환경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파괴한다"는 아우핑(Michael Auping)의 비판은 대다수의 대지미술을 자연 친화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반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간이 '자연환경 속에서 펼치는 인공의 예술 행위'를 통해서 생태미학을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도 자연 자체에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자연에 담긴 생태미학을 실천하려는 자연환경미술, 혹은 생태미술의 흐름이 최근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부터 만개한 한국의 '자연미술'은 자연물의 실재를 취함으로써 생태미학을 성취한다. 야투의 자연미술이나 서구의 생태미학을 품은 일부의 대지미술과 자연환경미술은 자연물의 '실제 제시'를 통해서 '생태적 리얼리즘'을 실천한다. '실재 제시'는 미술을 '자연의 생성 방식의 모방'으로부터 '자연의 비대상화'의 차원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그것은 추상미술처럼 '미술 내부의 변화'뿐 아니라 자연미술 혹은 생태미술처럼 '미술 외부로부터의 변화'를 수용하게 한다.

최근의 환경 위기와 재난의 시대를 직면하면서 생태미학을 실천하는 '조각 아닌 조각' 즉 자연의 본성을 닮은 자연미술 혹은 생태미술은 할 일도 많지만 갈 길도 멀다, '자연, 생태, 미술, 조각'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생물물리학적, 사회학적 환경과의 관계'를 함께 탐구하면서 상호연결주의를 실현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다원주의 조각의 시대에, 생태미학을 실천하는 생태적 조각이 맞닥뜨린 막중한 공공 기제인 셈이다.

김성호 미술평론가·APAP7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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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nnews.com/news/20221013181115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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