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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각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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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물코처럼 얽힌 나무·뿌리… 눈앞에 실재하는 ‘生의 에너지' (이길래 작가)
  • 게시일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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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Pine Tree With Three Root 2015-1’, 250×193×150㎝, 구리 용접, 2015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Ⅱ - (1) ‘생명의 원천’ 조형하는 작가 이길래

흙 · 금속 등 다양한 오브제로
자연의 순환 · 관계성 등 연구

서로를 품으며 중첩되는 세포
생태계·복잡한 인간사회 닮아

드러난 뿌리는 미의식의 확장
재현을 넘어 근원적 진리 천착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합니다. 한국 조각 예술의 정체성 모색과 함께 공공적 애정과 관심을 촉구하는 연재로, 지난해 첫 번째 시즌은 이른바 ‘K-조각’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규명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앞서 실험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주로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이미 단단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 조각의 ‘허리’들을 만납니다. K-스컬프처 조직위원회를 설립해 조각가들을 후원해 온 크라운해태와 공동기획했습니다. 더욱 심층적인 분석, 실질적인 전망으로 돌아온 연재에 기대와 성원을 바랍니다.
 

photo홍경한 미술평론가

작가 이길래는 인간성 상실과 같은 물질문명사회의 이면을 다룬 초기작품 ‘잃어버린 성(城)(1988∼)’ 연작으로 일찌감치 동시대적 작가로 평가됐다. 가속화된 사회에서 점차 증발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이후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끊임없는 해체와 경계 허물기를 반복한 결과 현재의 변별력 있는 조형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다.

자연과의 조우를 통해 체득한 미의식은 물성 및 재료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흙을 비롯한 철 등의 금속은 물론 굴 껍데기, 다슬기, 옹기 파편 등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해 자연의 순환성과 상호관계성 등을 연구했으며, 고고학적 분야까지 아우르는 탈장르적·탈경계적 태도는 조각의 정형적인 틀을 넘어서는 작금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작은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한 환경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가이아 이론(Gaia theory)과 맞닿는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 ‘대지의 여신’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지구를 뜻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구의 모든 환경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명체다. 그의 작업들은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전일론(Holism)이나, 생태계를 통섭의 공존적 관계로 해석한 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Næss)의 주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에게 자연의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내재적 가치와 함께 구성체계의 일부로서 연결성을 지닌다. 이와 같은 관계적·생태적 명제체계가 이길래 작업의 거푸집이다. 그곳엔 매 순간 유일하고 독립된 자연생명의 순리가 배어 있다. 실제로 최근 사비나미술관 초대전(2024.1.25∼4.21)에 선보인 대작 ‘Millennium Pine Tree Root 2023-2’를 비롯해 ‘Lump 2017 연작’ 등은 조화와 공존을 작업의 밑동으로 한 작가의 포용적·통합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여기엔 예술의 기능 및 역할에 의한 자연미학과 자연경험의 인식가능성이 녹아 있다.

포용과 통합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인체를 닮은 ‘Millennium Pine Tree With Three Roots 2019-1’을 포함해, 나이테와 뿌리를 조합해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시킨 ‘Pine Tree With Three Roots 2015-1’, 나무뿌리를 공중에 매달아 조각의 고정 불변성을 해체한 2015년 작품 ‘Roots’ 등이 그렇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와해시킨 채 형이상학적일 수 있는 개념을 실체적으로 구현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photo‘Millennium-Pine Tree Root 2023-2’, 650×730×900㎝, 구리 용접, 2023



‘Millennium Pine Tree Root 2023-2’는 대표작에 속한다. 금강송의 형태와 상징을 통해 ‘소나무’의 특성을 빼어나게 표현한 이 거송은 다양한 종류의 동(銅)파이프를 이용해 자연의 형상을 빚는 조형기법으로 주목받은 작가의 독자성을 집대성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동파이프 ‘고리’로 채워진 이 작품에서 고리는 자연과의 공명 및 작가적 수행의 끊임없는 공전을 엮는 오브제다. 생물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 생명의 근원인 세포들이기도 하다. 세포는 의존적 집합을 거치며 소나무의 꺼칠한 껍질이 되고, 하나의 거대한 형태가 된다. 작은 세포(고리)가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나무라는 생명체를, 생명체(나무)는 세포의 결집으로 건조되는 구조다.

세포는 상호 간 연관을 맺는 소우주 속에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초월체로 진화한다. 우주만유 일체의 사물이 서로에게 관계한 채 얽히고설켜 전부가 되는 중중무진(重重無盡), 즉 모든 존재는 인드라망의 그물코처럼 촘촘하게 연결돼 있으며 서로를 끝없이 품는다는 것이다.

소나무에 투사된 다의적 행간도 중요하다. 그의 다른 소나무들이 그러하듯 ‘Millennium Pine Tree Root 2023-2’ 역시 시간의 유산과 회복력, 생명의 순환을 담보한다. 땅과 하늘 사이에 놓임으로써 영적 매개임을 고지하고, 나무의 고요한 본성은 평화 혹은 평온함과 갈음된다. 20여 척이 넘는 장신(長身)은 연륜과 경험에 따른 ‘지혜와 이상적인 존재’에 대한 은유다.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소나무는 가장 오래 산다는 브리슬콘 소나무(Bristlecone pine)처럼 장수와 유구한 역사를 의미한다. 물론 소나무를 연상할 때 떠오르는 미덕·굳건함·인내심 등의 명사는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지적·정서적 특성과 직결되며, 세대를 초월한 환경위기에 대한 경각심과도 분별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일련의 동명 작업이 보다 특별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뿌리’다. 뿌리엔 자연과 인간 삶의 기초를 제공하는 근본원리가 배어있다. 이는 감춰져 있어 보이진 않으나 세상만물을 지탱해주는 생명의 에너지다. 삶과 죽음, 성장 및 재생을 거치는 자연 순환의 근본이다. 넓게 퍼져 다른 뿌리와 중첩되기도 한다는 점에선 복잡한 인간사회, 생태계 시스템과도 관련 있다.

다수의 소나무 작업을 선보였지만 땅속 깊은 곳, 가시적이지 않은 뿌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최근이다. 드러나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한다는 건 눈에서 정신으로의 전환이다. 필자는 이를 사물의 재현을 넘어선 사유로의 진입이자 미의식의 확장으로 본다. 예술이란 또 다른 경험의 묘사가 아니라 그 자체의 경험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photo‘Root’, 15×265×255㎝, 구리 용접, 2015



근래 이길래의 작업은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과 경이로움, 원형성을 강조하면서도 명시적인 측면에서 벗어난 ‘깊이’로의 천착이 눈에 띈다. 이는 자연이 예술과 미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해온 오랜 고민의 결과다. 그 고민의 자국들은 ‘Millennium Pine Tree Lump’ 시리즈와 ‘Root’ 연작 등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 작품들은 바위, 소나무 뿌리를 조형화한 것이거나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개의 작은 뿌리가 뻗어 나오는 형국이다. 어떤 것은 허공에 떠 있으며 또 다른 것은 듬성듬성 공간에 놓인다. 시간을 등진 돌과 시간에 순응하는 뿌리의 조합은 함께 존재할 때 자연은 비로소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작가의 철학이다.

철학은 예술 장르와 구분되지 않은 채 복합적으로 끊임없이 그리드(Grid)되고 침범하는 혼종의 양태로 서술된다. 기이하나 독창적이다. 각주가 배제된 군더더기 없는 조형 탓에 오히려 사유의 진폭은 넓다. 경계가 무너지자 상상이 증폭되고 사고의 지평은 확대되는 모양새다. 미적 팽창 여실한 이 작품들은 모든 존재가 에너지와 영혼을 지닌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과 작가의 감성에 ‘느끼는 생각’이 덧대진 결과다. 이를 토대로 비움으로서의 채움을 구축하는 소나무와 ‘공감각적 조각’이 만들어졌고 작가 정신 속에 내재된 무형의 수사가 어떻게 시각예술로 실제화될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소나무는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총체다. 생성과 소멸의 현상세계를 함축함과 동시에 생멸변화를 떠나 항상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진리의 장소다. 그곳에서 자연과 인간은 교통한다. 작가의 고된 노동집약적 작업을 통해 모든 존재는 하나가 된다. 이길래는 이제 재현의 거죽이 아닌, 그 속에 담긴 것에 무게를 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어떤 방향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우리 것만의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지에 시선을 옮긴다. 그 시선 끝에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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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래 작가는

한국 대표적인 조각가로 평가받는 이길래 작가는 1961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경희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991년 첫 개인전 이후 사비나미술관, 뉴욕 오페라갤러리 등 15여 회의 주요 개인전과 초대전, 그룹전을 개최했다.

이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들은 금세 평단의 주목을 받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1990)을 비롯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2015)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문화재단, 포항시립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길래를 가리키는 명사는 답습된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다. ‘소나무 작가’로 불리지만 자신이 청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부여됐다. 소나무와 닮은 게 있다면 거친 풍랑 앞에서도 힘든 작업과정을 무색하게 하는 인내를 지녔다는 점이다.

30여 년간 자기 정체성과 한국조각의 좌표를 그리기 위해 예술에 대해 수없이 질문해온 작가는 작업의 재료와 형식은 바꿔갔지만 자연과 인간의 통합적 세계관은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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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4070101032412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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