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옥 ‘풍선과 큐브’, 스테인리스 스틸, 캔디 도색, 30×28×83㎝, 2022. 중력과 일상의 무게를 잊어버리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엿보인다.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 (4) ‘무게’를 조각하는 전강옥
조각의 근간 ‘중력’ 에서 시작
기울어진 책장·매달린 파편
관객이 불안감 갖고 감상케해
균형·불균형의 문제 시각화
풍선에 매달린 동물과 사물
중력 거스르며 ‘상실’ 표현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드러내
가느다란 끈에 매달려 흐느적거리는 듯한 모습의 고양이나 코끼리, 또는 어떤 물체인지 명확하게 분간이 되지는 않지만 무언가 육중한 대상이 끈에 매달려 축 늘어진 형태 등, 전강옥의 근래 조각들은 다양한 동물과 사물을 풍선에 매달아 둔 것들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마치 초현실주의의 한 장면을 조각으로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동물들과 사물들이 반짝이는 풍선에 매달려 어쩔 도리 없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재료들의 무게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는 다른 가벼움의 감각을 전달한다. 이때 작품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이란 물질의 무게뿐만 아니라, 팝아트 계열의 작품을 볼 때 느낄 수 있듯이 개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심리적 가벼움까지도 포함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대중성과 상업성에만 관심을 기울여 쉽고 가볍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강옥이 그동안 지녀온 세계관과 조각이라는 예술에 대한 깊은 사색이, 이제는 그 개념의 무게를 극복하여 편안하고 여유로운 경지에 도달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삐딱하게 보기
전강옥은 그동안 ‘불완전함’ ‘부조리함’ ‘불균형’ 등의 문제를 조각의 영역에서 주제로 다루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자신이 다루는 조각의 다양한 재료들로부터 물리적 특질이나 자연의 법칙, 또는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구조적 힘과 원리들을 조각의 영역 안에서 조형화해온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병이 놓여 있지만 둥근 받침대를 딛고 서 있어서 기울어진 책장(‘삐딱하게 서 있기(책장)’, 2008), 지면에 꼭짓점을 맞대고 서 있는 역삼각형과 무게추들(‘무게의 논리 II’, 2009) 등은 올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 똑바로 서 있는 것과 기울어진 것, 균형과 불균형의 문제를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사물들이 서로 기대서 유지되는 형태는 오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언제라도 금방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관람객은 긴장감과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선으로 작품을 조심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의 출발은 조각의 근간을 ‘중력’이라는 관점에서 다루며 시작됐다.
전강옥 ‘삐딱하게 서있기(책장)’, 나무, 석고, 230×130×30㎝, 2008.
조각: 중력의 예술
바깥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나가며 외형을 형성하는 조각이든 필요한 부분을 더해가며 형태를 완성해나가는 소조든,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논의를 제외한다면 조소는 일반적으로 3차원의 입체감을 지닌 것을 기본으로 다뤘다. 조소 예술은 형태, 볼륨, 재료와 물성 등을 주요 토대로 전개돼 왔지만, 전강옥은 재료의 무게에 주목하고 이를 중력과의 연관성 속에서 조형화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전강옥은 조각이 “중력의 예술”이라고 단언한다. 조각은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을 우선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엄격한 규칙의 예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조각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모든 물체를 지표면으로 잡아당기고 쓰러뜨리는 중력의 힘에 대한 완벽한 지배다. 따라서 전강옥은 조각이 조각이 되게 하는 근원적 조건으로서의 중력 안에서 균형, 불안정, 운동, 변화, 긴장, 그리고 이에 대한 관람객의 지각까지도 작품의 요소가 되도록 연출해낸다.
전강옥의 중력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삶의 한 단면처럼 읽힐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의 반대편, 또는 그것을 ‘삐딱하게’ 바라볼 때 익숙한 것으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견을 위해 그는 철저한 작가정신에 물리학자 같은 태도를 더하고 노동을 배가시켰다. 위태롭게 보이는 작품들은 소재들을 접합하거나 접합제의 사용을 통해 겉으로만 연출해낸 것이 아니라, 각 재료의 크기와 특성을 활용하여 손으로 일일이 정확한 균형을 맞춰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만큼, 자칫하면 모조리 무너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그동안의 숱한 전시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전화는 “작품이 부서졌으니, 빨리 치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제 전강옥 작가는 다른 작가들처럼 “어떤 작품이 팔려나갔다”는 ‘희망찬’ 소식을 기다리는 대신, 전시 중의 사고까지도 작품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 불안정하고, 심각하고, 때로는 작품 훼손에 대한 관객의 공포를 담보로 한 작품만을 자신의 평생 작업으로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불안정 속의 안정, 불균형 속의 균형, 정지 속의 운동, 변화 속의 고정에서 나아가, 중력에 의한 침잠 대신 중력을 이겨내고 위로 상승하는 여러 양태들을 조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풍선을 달고 비상하는 사물들
인간은 태어나면 누운 채로 땅바닥에 붙어 있다가 점차 성장해 기어 다니고 일어서 걷지만, 노쇠해지면 결국 중력에 이끌려 다시 땅바닥에 밀착된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은 우리 삶의 필연적 숙명이다. 이 글을 준비하는 기간에 그토록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필자의 부친께서 불과 몇 달의 투병으로 누워계시다가 별세하시는 과정을 지켜보며, 전강옥이 중력이라는 주제의 역발상을 통해 하늘로의 상승을 모색하게 된 심정을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전강옥은 최근 몇 년간의 작품에서 풍선이라는 매개를 통해 ‘중력의 힘과 일상의 무게를 잊어버리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표현하고자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작품은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에도 구애받지 않고, 풍선에 달린 온갖 육중한 동물과 사물의 무게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지도 않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 물리적 법칙의 위배는 여전히 철저한 물리적 계산 덕택에 성립된다. 아마도 작가에게는 이것이 그동안 삐딱하게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것을 발견해냈듯, 작가 자신과 작품의 주제를 삐딱한 각도에서 재발견해낸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을지도 모른다.
전강옥 ‘비행석’, 화강암, 낚싯줄, 50×400×400㎝, 2008. 크라운해태 제공
K-조각의 더 높은 비상을 위해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의 이러한 발상 전환은 더욱 많은 관객과의 공감과 소통을 추구해온 절실한 내적 추구도 많은 작용을 했지만, 외적으로는 그가 전업작가로서 조각이라는 영역을 포기하지 않도록 뒷받침해준 레지던시 제도와 특히 크라운해태의 창작 스튜디오라는 작업 공간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전강옥 작가가 중력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것도 조각 작품의 무게와 크기에서 시작됐고, 이동과 소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열악한 국내의 현실 속에서 추락과 불균형 작업을 비상과 초월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기한을 정해두지 않은 크라운해태 창작 스튜디오 입주 덕분이었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자신의 지속적인 작품활동과 창작의 변화를 이끄는 데 매우 중요한 견인이었다고 전강옥은 강조한다. 정교한 제도적 뒷받침과 관심이 세계로 향하는 K-조각의 미래에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을 증명해준 것 역시 전강옥의 작품 변화가 보여준 의의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전강옥이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삐딱하게 보면서 또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와 소통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장원(미술비평가)
■ 전강옥 작가는
전강옥 조각가는 프랑스의 파리 1대학을 최고 점수로 졸업해 예술학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의 3대 살롱 중 하나인 살롱 죈 크레아시옹에서 비평가 선정 작가로 뽑히며 동양계 최초의 전시기획 임원으로 활동했다. 15년간 프랑스에 체류하며 다수의 개인전과 국제 비엔날레 참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프랑스 학술지 논문을 비롯한 다양한 텍스트와 논문도 발표했다. 2007년 귀국 후 현재는 크라운해태 창작 스튜디오에서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공동기획
[기사보기]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81801032112000001
|